[시리즈] 민주주의 항해일지 1.0 | 4화. 시민협력플랫폼을 향해 한 걸음 더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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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3.04.18. 조회수 279
서울특별시 민주주의서울 열린정부

지난 3화에서는 시범사업에서 1단계로 넘어간 민주주의 서울(이하 민서)의 경험을 나눴습니다. 4화에서는, 좀 더 나아가 민서의 5단계 모델을 구상하고 계획했던 이야기를 전합니다. 우리가 나아가야 할 혹은 만들어야 할 시민협력플랫폼의 모습도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글은 "3화. 이제 실전이다! 민서의 첫걸음 이야기"에서 이어집니다.

민주주의 서울(민서)의 시범사업과 1단계 사업을 거친 후, 서울시는 ‘서울민주주의위원회’를 출범합니다. 민서의 총괄기획자였던 저는 ‘민주주의 서울 5단계 계획’을 수립하고 2단계 실행을 준비합니다. 여기에 위원회의 계획과 민서를 연결하는 작업까지 했는데요. 기획자로 일하던 마지막 날, 위원회 방향과 함께 민서의 2단계 장기 목표를 공개 발표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시민의 제안이 정책으로 발전해 서울시장이 실행계획을 발표하고, 어떤 제안에 대해서는 시의원이 조례를 만들겠다고 약속합니다. 시가 준비하던 정책이나 이슈로 불거진 사안에 대해 시민의 의견을 듣고 실행계획을 보완하거나 아예 실행을 유보하기도 합니다. 시민이 제안하고 공무원이 수용 여부를 결정하던 단계에 비해 제안의 주체와 숙의의 과정이 발전하였지만, 제안과 숙의가 정책으로 발전하고 실행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과제가 남아있었습니다.

▲2019 민주주의 서울 성과공유회에서 '민주주의 서울 발전 방향'을 주제로 발표 중인 권오현(시스) 이사장

더 많은 제안이 의미있는 정책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민서의 운영주체를 확대해야 했습니다. 마지막 날, 서울시는 자치구와 산하기관을 모아 2단계 실행 계획을 공유합니다. 시가 주도적으로 벌이던 민서 사업을 자치구와 산하기관이 참여하는 운영체계로 확대하기로 합니다. 제안을 분석해보면, 시민 대부분이 교통과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었는데요. 시로 넓히면 출퇴근이나 미세먼지, 자치구로 좁히면 주차와 쓰레기문제였습니다. 시민 피부에 와닿는 플랫폼이 되려면, 제안이 변화로 이어져야했지만, 시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치구와 서울시 산하기관이 참여하는 운영체계를 구성했습니다. 민주주의플랫폼을 운영하려는 의지가 강한 구와 기관을 우선 참여시키며 운영과 홍보를 지원하고, 이미 개발된 플랫폼을 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했습니다. 1단계는 ‘천만상상 오아시스’를 다듬어 사용할 수 있었지만, 2단계부터는 재개발이 필요했습니다. 때문에 새 플랫폼은 다양한 주체가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기능을 중심으로 개발했습니다.
실행이 되지는 못했지만, 운영주체를 확대하려는 노력은 향후에도 지속할 예정이었습니다. 시민의 제안이 실질적이고 의미있는 정책으로 자리잡으려면 때로는 조례 개정이 필요합니다. 해외의 경우에는, 민주주의플랫폼을 시의회 혹은 시의회 출신의 공무원이 운영하기도 합니다. 서울시 역시 다음 단계에서는 시의회와 함께 민서를 운영할 계획을 추진하려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서울시교육청도 운영에 참여할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이처럼 서울을 대표하는 기관이 모두 참여하고 이를 지원하는 운영체계를 구성하며 필요한 디지털플랫폼을 만든 후, 숙의와 공론화 과정을 거친 제안에 대해 실질적 처리가 가능한 기관에서 답변하고 실행하도록 만드는 게 3단계의 계획이었습니다.
▲민주주의 서울 시민제안워크숍 현장. '당신의 제안이 서울의 변화를 만듭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보입니다. 보다 많은 시민의 제안이 정책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지역을 대표하는 모든 기관이 참여하고 지원하는 운영체계를 구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복잡해도 정교하게 운영되는 플랫폼으로

4단계에서는 주로 제도와 기술과제를 해결하는 것에 집중하려고 했습니다. 국민제안에 관한 법률과 시민이 제안하는 조례를 처리하는 법이 존재합니다만, 디지털플랫폼에 대해서는 제도적 기반이 아직 모호합니다. 1명, 5명, 50명, 500명이든, 1만 명, 10만 명, 20만 명이든 토론과 숙의 등의 과정에 필요한 숫자에 제도적 근거는 없습니다. 민서와 같은 민주주의플랫폼으로 시민이 결정까지 내리는 시대는 언젠가 올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 전에 우리는 어느 수준의 투표 참여가 필요한지, 투표만으로 충분한지, 얼마의 기간 동안 투표해야 하는지 등의 기준을 논의해야 하고 관련 제도를 만들어야 합니다. 시민이 공감하는 과정을 거쳐 대표성을 확보해야 민주주의플랫폼 관련 제도도 안착할 수 있습니다. 혐오와 극단적인 상호 공격으로 점철되는 인터넷 상의 문화는, 제도적 보완책을 아직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제도는 사회의 경험과 공감을 필요로 합니다.
이 단계에서는 또한 개개인의 투표가 실제 해당시민이 참여한 것인지, 투표가 정확하게 처리되었는지 시민이 직접 확인할 수 있는 프로세스 등의 기술을 마련하고 도입할 계획이었습니다. 또한 행정안전부가 보유한 주민데이터와 연동하여 서울 각 자치구와 동별 실제 거주자만의 참여, 서울시 거주자만의 참여, 서울시에 거주하지 않는 사람의 참여 등을 구분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출 계획을 세웠습니다. 기술 도입 과정에서 개인정보 보호를 극대화하면서 효용성을 느낄 수 있는 기술과 제도를 마련하는 일입니다. 단순하고 쉽게 여겨질 수 있지만, 여러 쟁점이 많은 영역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단계에서 이미 제정되어 있는 주민투표의 ‘유권자의 3분의 1 이상이 투표했을 경우 개표한다'라는 내용을 중요하게 참고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100만 명이 참여한다고 해도 기존 제도에 비해 제한적이고 대표성이 낮습니다. 또한 투표를 넘어 다양한 방식의 참여와 숙의, 정보공개를 최대한 활용하고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합니다.
이 모든 일을 3년 안에 실행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단계를 모두 거치고 나면 서울시 민주주의 플랫폼은 ‘시민과 시가 함께 제안하여 숙의와 공론화 과정을 진행하며, 실질적 권한을 가진 기관이 책임지고 실행하는 정책수립, 조례개정, 실험단계를 거치고, 필요한 경우 신뢰할 수 있는 기술과 제도에 입각한 주민투표가 일어나는 곳’이 됩니다.
이를 단순히 ‘제안 플랫폼’, ‘공론장 플랫폼’, ‘직접 민주주의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빠띠는 서울만의 독특한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각자 원하고 할 수 있는 만큼 제안이나 숙의 과정에 참여하는 시민들. 다양한 상황과 전문성을 가진 시민과의 협력으로 정책수립과 실행에 나서는 선출직과 기관들. 이를 뒷받침하는 혁신기술과 지원체계를 운영하는 공무원과 전문가들. 21세기의 민주주의는 시민과 정부, 기술이 서로 시너지를 내는 형태가 되어야 바람직하고, 1천만 명이 넘는 서울시의 민주주의는 복잡해도 정교하게 운영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5단계의 민주주의 플랫폼은 개인화된 플랫폼이자 숙의, 공론, 결정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다양한 기관의 실행 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통합 플랫폼으로 설계되었습니다. 시민이 플랫폼에 자신의 아이디로 로그인하면 거주지(동네)의 제안과 숙의, 토론을 볼 수 있습니다. 속한 직군과 관련된 기관이나 구의 현안도 볼 수 있으며, 사전에 미리 등록한 관심분야나 활동 주제에 기반한 개인화된 주제도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시 차원의 교통, 환경, 경제 등의 이슈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참여해야 하는 숙의나 투표 단계에서는 놓치지 않도록 알림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전문가와 기관은 파악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며 여러 질문에 성실하게 답변해야 합니다. 여러 기관이 협력하는 체계를 구성하고, 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공무원들은 유의미한 보상도 받을 수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맞이할 플랫폼 정부는 이렇듯 일상에서 시민과 기관이 협력하는 체계를 기본으로 필요로 할 것입니다. 빠띠는 이런 활동이 이뤄지는 공간에 시민협력플랫폼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숙의민주주의 다음의 민주주의에는 어떤 수식어를 붙일 수 있을까요?

협력과 신뢰로 만드는 지속가능한 사회를 꿈꾸며

서울시와 함께 세웠던 시민협력플랫폼의 비전은 민주주의가 확대된다면 필수적으로 우리가 가게 될 길입니다. 여기에는 구체적인 실행 계획과 함께 이를 지지하는 시민의 힘이 필요합니다. 인터넷을 통한 민주주의 실현이라는 기대는 역설적으로 여러 안타까운 일을 겪으며 한국 사회에서 귀한 믿음이 되고 있습니다. 이 믿음을 잃지 않는 동시에 숙의와 공론의 가치, 정보 공개와 신뢰의 가치를 직접 경험하는 시민과 기관이 늘어나야 합니다. 일희일비하거나 성급하지 않게 구체적 계획을 세우고, 현존 과제를 무시하지 않으며 제도와 기술을 마련해나가야 합니다.
모든 시민이 참여하는 대규모 민주주의의 실현은 역사 이래로 인류가 늘 꿈꿔오던 일입니다. 이를 통해 소외받는 사람 없이 모두가 권리를 누리고 구성원이 직접 참여하면, 전문가만으로 이뤄지던 혁신을 넘어설 수 있으며 동시에 공공과 사회를 위한 가치를 확대하고 유지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여러 이해관계와 차이에서 오는 갈등과 차별, 혐오를 신뢰와 협력, 자신의 힘과 서로에 대한 공감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기술을 통해 대규모의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겠다는 기대는, 경제적 격차와 기후위기가 국가수준을 넘어 개인의 일상을 위협하는 시점에서 어느 때보다 절실한 해결책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협력과 신뢰로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요? 민주주의 서울로 그렸던 ‘일상의 민주주의가 작동하는 서울’이라는 비전이 다시 한 번 소중하게 다가옵니다.

글 : 시스(ohyeon@parti.coop)

  • 이 글에 이어 '오관영 전 서울민주주의위원회 위원장 인터뷰 - 시민협력플랫폼, 더 많은 시민의 목소리 담을 수 있어야'를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민주주의 서울'과 '시민협력플랫폼'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를 보실 수 있어요. [읽으러가기]
  • 지금까지 '시민협력플랫폼'의 토대가 된 '민주주의 서울'과 관련한 경험을 나눴습니다. 빠띠는 민서의 경험을 토대로 시민협력플랫폼을 실현시키기 위한 활동을 이어나가기로 했습니다. 5편부터는 이를 위한 빠띠의 실험과 도전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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