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5, 빈칸을 채우다'는 지역생활실험실@055*의 9개 프로젝트가 채워나가는 경남의 매력, 그리고 새로운 연결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지난 2월 24일에는 경남에 살고 있는 우리가 가진 다양한 경험과 정보를 연결해서 더 나은 경남을 위한 로컬 지식 위키로 만드는 ‘055 연결의 현장'을 진행했는데요. 그 현장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다채롭게 빈칸을 연결해 나가는 이야기를 시리즈로 선보입니다.
* '지역생활실험실@055'는 경남이 가진 매력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고, 지역의 가능성을 기반으로 사람과 사람, 지역과 지역 간의 연결을 통해 도전을 시도하는 리빙랩 프로젝트입니다.
> 고성 빈집공작소, 빈집을 지역의 자원으로 활용한 공유공간이다.
빈집공작소는 빈집이 지역의 자원으로 활용돼 사람들이 함께 모여 네트워크를 만들고 함께 성장하는 공유공간 프로젝트다. 공유목공방을 조성하고 공공예술 활동을 펼친 것이 대표적이다. 공유를 위한 창조는 ‘살고 싶은 지속가능한 동네를 만드는 것’이 목적인 지역관리회사다. 지역에서 커뮤니티를 디자인하고 공유공간을 운영하며 로컬콘텐츠를 만든다. 경상남도 지역에서 빈집을 주제로 활동하는 두 팀을 만나 지속가능한 동네에 관한 이야기를 청해들었다.
> 공유를 위한 창조 박은진(빌리), 빈집공작소 김지연, 빈집공작소 김보경.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어떤 활동을 하고 계신가요?
빈집공작소 김보경
지역에 있는 청년들과 빈집공작소를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성 청년센터에서 인테리어 목수반을 수강하고 공방을 만들면서 프로젝트가 시작됐어요. 처음 선정된 공모는 우리 마을 문제 해결단 사업의 농촌 마을 리빙랩이었어요. 300만 원을 지원받아 평상과 계단을 제작해드리는 등의 봉사를 했었죠. 우리가 하는 일을 지역의 청년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으로 사람을 더 모았고, 지금은 10명 정도가 활동하고 있어요. 주변에서 ‘이런 공간을 어떻게 만들었냐’ 같은 칭찬 섞인 질문을 하죠.
빈집공작소 김지연
직장을 그만둔 지 한 1년 반 정도 됐어요. 집에서 은둔하다가 김보경이라는 친구가 나와서 이것저것 해보라고 하기에 마을 활동가를 하고 있습니다.
공유를 위한 창조 박은진(이하 빌리)
거제에서 지역 재생 프로젝트를 했었어요. 그러다가 밀양소통협력센터 수탁사로 선정되면서 작년부터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는 도시 계획을 공부했어요. 마을 단위에서 지역 주민들의 참여를 통해 살고 싶은 동네로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여겨 왔죠. 이런 일을 평생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어요. 내가 살고 싶은 동네가 없으니, 직접 만들어서 살아야겠다, 이 일로 돈을 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창업도 했어요. 부산에서 했던 첫 번째 프로젝트는 동네 어머니들이랑 빈집을 같이 개조해서 게스트하우스를 만드는 사업이었어요.
> 빈집공작소 마당 풍경. 아이들이 뛰노는 와중 만찬 준비가 한창이다.
경상남도에 언제부터 거주하거나 활동을 하셨나요?
김보경
저는 고성이 고향이에요. 시댁과 친정이 다 이곳이죠. 학업 때문에 고향을 떠났다가 30대에 돌아왔는데, 고향에 남아 있는 친구가 있길래 결혼해서 살고 있어요.
김지연
저는 진주가 고향인데 친구인 보경 덕분에 고성으로 오게 됐어요. 온 지는 얼마 안 돼서 지역(고성)을 잘 몰라요. 보경과는 어린이집·유치원 선생님 일을 함께 하던 동료였어요. 저는 이 일 말고 다른 일은 할 수 없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막상 나와 보니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다양하더라고요. 아직은 긴장감을 놓지 않고 일하는 중이에요.
빌리
밀양과 거제를 넘나들며 살고 있어요. 다만 고향은 창원이에요. 창원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다가 대학을 부산 쪽으로 갔죠. 거제로 이주한 뒤 밀양으로 넘어오게 됐어요.
> 박은진.
우리 동네 안에서 빈집에 대한 의제를 다루고 활동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진짜 공동체가 있을까’라는 스스로의 질문이 있었죠. 우리가 공동체를 꾸려봐야 되겠다라는 생각에 빈집공작소가 시작됐어요. 제가 공동체를 경험해 본 적이 사실 없더라고요. 공동체가 뭔지 알고 싶다는 마음에서 출발한 거죠. 그 일환으로 마을 발전계획 수립 워크샵을 활동가들과 하고 있어요.
> 김지연.
어떤 분들은 지역에 콘텐츠가 없는 게 고민이라고 하셨어요. 나만의 공간이 있고 거기에 사람들이 모여 왕래하는 것 자체가 콘텐츠가 될 수 있을까요?
사람이 기회인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이 프로젝트하면서 많이 들었어요. 감사한 사람들도 만났고 도와주겠다는 사람들도 만났죠. 계속 관심을 많이 가져주는 분들이 정말 귀해요. 이번에 군에서도 보도 자료가 나왔어요. 우리가 청년센터에서 배운 목공 수업으로 사람들을 연결하고 있다고 하니 와주시더라고요. 밀양소통협력센터가 완고한 벽에 균열을 내고 있다는 느낌도 받아요.
부산에서 캠프 프로젝트를 할 때 있었던 공간이 공유재산이었어요. 그 동네에서는 생존을 위한 기반인 거죠. 그런데 이거에 대해 행정이 너무 터치를 하더라고요. 우리는 지금 당장 돈을 벌기 위해서 구조를 바꾸고 기능을 전환시켜야 되는데, 행정에 다 막히는 거예요. 게다가 계약기간이 끝나면 쫓겨날 신세였죠. 불안한 마음을 안고 부산을 떠날 때, ‘우리가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가지자’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하지만 부산은 너무 비쌌죠. 우리가 살고 싶고 삶의 지향점에 맞닿아 있는 동네들을 찾다 보니 거제로 가게 됐어요. 우리 공간이 생겼을 때 접할 수 있는 기회들이 연결되고 커져가는 것들을 경험했죠. 공간을 리뉴얼하면 새로운 희망과 변화를 시각적으로 볼 수 있어요. 저희가 거제에서 첫 번째 공간을 만들었을 때 바로 옆에 빈집 주인이 찾아와서 ‘공간을 저렴하게 내겠다, 너네가 써봐라’라고 하시며 기회가 주셨죠. 두 번째 작업을 하니 또 다른 집이 찾아오셨어요. 단기적으로 봤을 때 공간 한 채가 바뀌는 것밖에 안 보이지만, 꾸준히 한다면 지역 주민들이 인식이 바뀌고 버려진 공간이 동네에 불을 밝히는 곳이 돼요. 전환의 관점에서 빈집을 잘 활용하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저희는 생각합니다.
> 김보경.
지역 주민 분들이 보시기에 외부인이 와서 뭔가 고치고 하는 게 마냥 반갑지는 않을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활동 과정에서 주민 분들과의 사이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 싶어요.
사실 사이가 늘 좋았던 건 아니에요. 빈 집을 고쳐놓으니 주인이 나가라 하는 경우도 있었죠. 어떻게 보면 쫓겨난 거죠. 그래도 억울하진 않았어요. 어쨌든 지역에 선한 영향력을 끼쳤고, 우리가 이렇게 뭔가 해낼 수 있는 팀이라는 걸 보여줬으니까요. 저희가 나오고 나서 주인분이 공간에 더 투자를 하셨어요. 그 결과 공간이 더 예뻐지고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찾거든요. 저희 입장에서는 너무 좋죠.
지역 주민 분들이랑 또 어떤 커뮤니케이션이나 이야기가 있었나요? 더 자세히 듣고싶네요.
저희가 첫 번째 공간을 만들 때는 커뮤니케이션이 전혀 없었어요. 그런데 두 번째 공간을 할 때는 동네 사람들의 관심이 너무 많았어요. ‘이 작업은 이래서 안 된다’, ‘차는 여기에 대면 안 된다’ 같은 거죠. 처음 공사할 때 막 기웃기웃하시더니, 나중에는 막 들어오셔서 보시고 참견하고 그러셨죠. 공간은 저희들이 직접 만들었어요. 최근 들어서는 동네의 오픈 스페이스나 공공 공간들의 DIY 활동을 주민분들과 같이 해요.
동네 어른들은 외지인이 빈집에 들어오면 침략당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저희는 ‘저 좋은 공간을 왜 비워두지’ 라는 생각이었어요. 공간을 쓰려고 하는 사람 입장에서만 생각한거죠. 다른 관점에서, 저희는 침략자인 거에요. 원주민들은 마을의 내 공간을 누군가와 공유하는 게 싫을 수 있잖아요. 옛날에는 저 엄청 강경파였거든요. 빈집세를 물려야 된다는 주장도 했었어요. 다만 그렇게 접근하면 갈등의 골이 깊어지겠다는 걸 깨달았죠. 그래서 생각을 좀 바꿨어요. ‘우리 엄마 손때가 묻은 공간을 쉽게 내주기 싫다’는 주민에게 ‘정원을 예쁘게 꾸며놓고 티 테이블도 놓으며 어르신들이 이용할 수 있게 문을 활짝 열어놓는 건 어때요’라고 제안하는 것 처럼요. 빈집 사업을 할 때 집주인이 뭘 하고 싶은 건지도 진심으로 물어봐야 돼요. 마을 사람들과 어떻게 잘 융화될 수 있느냐도 중요해요.
> 마당에 놓인 책상. 빈집공작소 팀원들이 직접 꿰맨 꽃무늬가 수놓여 있다.
유휴 공간 이슈는 더욱 많이 발생할 문제죠. 관련해서 우리가 해볼 수 있는 게 있을까요?
사업 측면에서 경험 있는 친구들만 너무 지원하고 선발되는 면이 있어요. 경험이 없는 친구들은 도전할 기회가 없죠. 빈집 문제를 자꾸 청년하고 매개지어 풀려다 보니 해법을 찾기가 더 힘들기도 해요. 빈집을 살려낼 수 있는 공동체가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제안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지역에 협동조합과 비영리단체도 만들며 커가야 해요.
맞아요. 저도 부산에서 거제로 내려오게 되면서 사실 정말 힘들었어요. 무언가를 나누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회사 식구들밖에 없는 거예요. 고립이 되는 거죠. 경상남도는 먼저 손을 내밀지 않는 지역이라고 느꼈거든요. 뭔가 같이 해보고 싶고, 연결되고 싶고, 알아보고 싶어요. 지역에 자원과 정보가 한정적이고 기회도 없다보니 더욱 이런 생각을 하게 됐어요. 저희 입장에서는 지역에 얼마만큼 우리 뜻을 지지해 주는 동료들이 있는지가 중요한거죠.
지역 간의 연결, 세대 간의 연결이 경상남도 안에서 일어날 수 있다고 보시나요?
발견된 팀들이 스스로 지역에서 효용성을 느끼고 지속 가능하게 나아가는 기반이 필요해요. 그게 사업비인지, 네트워크인지, 성장지원인지는 고민이지만요. 더 촘촘하게 연결망을 만들고 많은 친구들이 경험해 봤으면 좋겠어요. 사업도 잘하는 팀이 아니라 성장할 수 있는 팀, 돈이 없어도 깡으로 끝까지 할 것 같은 친구들을 지원했으면 좋겠어요.
> 빈집공작소가 꾸민 공간에서 열리는 만찬 준비에 한창인 모습.
경상남도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으신가요?
저는 행복한 동네에서 살고 싶어요. 옆에 어떤 사람들이 같이 살아가고 있느냐가 중요하죠. 재미난 사람, 열정적인 사람, 도전적인 사람들이 다양하게 어우러져서 살았으면 좋겠어요.
지역에 있는 청년들, 지역으로 돌아오는 청년들이 자신이 사는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자부심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두 팀의 활동은 지역 활성화와 청년 활동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해 보인다. 빈집을 지역 주민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등 소통과 협력 강화를 위한 노력도 돋보인다. 빈집을 활용할 수 있는 공동체 활동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기를 기대해본다.
✏️ 글, 사진 : 차종관대학언론인, 기자 이후의 삶을 모색 중인 청년. 언젠가 문제해결 비즈니스를 일굴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