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사회 공존을 위한 대화 실험

데모스X
발행일 2023.10.09. 조회수 313

친구가 보내준 링크를 통해서 우연히 '한국의 대화'라는 사회 실험을 알게 되었다. 서로 성향이나 생각이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라고 단순히 이해하고 무심결에 참가 신청을 했다. 참여 대상자로 선정이 되었다는 메시지와 함께 설문을 하라는 안내가 왔다. 질문을 읽어보니 대부분 논쟁적인 주제들이었다. 기후/환경에 대한 관점, 동성애에 대한 관점, 노동조합에 대한 관점, AI와 정년 이슈까지. 설문에는 성실하게 내 생각대로 응답했지만 행사 당일이 걱정되었다. 설문에 응답하다 보니 이렇게 논쟁적인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 두렵게 느껴졌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무차별적인 인신공격이나 댓글 테러, 심지어는 물리적 가해까지도 가해지는 세상 아니던가.

조금 걱정이 되기는 하였지만 불의의 순간에는 7년간 수련한 주짓수로 내 몸을 보호하겠다는 다짐을 하며 행사장에 갔다. 분주히 행사가 준비되고 있었고 나는 적당한 곳에 앉아 사람들을 관찰했다. ‘인상을 보아하니 젠더운동가이신가?’, ‘저 분은 환경운동가처럼 생기셨네’ 따위의 상념들로 머리를 채웠다. 낯선 사람과 대화해 보는 것 자체가 너무 오랜만이라 그런지 더 긴장되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직업을 가져서 낯선 이와의 대화도 잘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떨렸다.

행사가 시작되고 행사의 취지 등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다. ‘서로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한데 모여서 이야기를 한다면 서로를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라는 어떻게 보면 당연하기도 하고, 나이브하기도한 이 행사가 과연 얼마나 우리 사회에 도움이 될까. 나는 회의적이었고 일회성 이벤트 정도로 생각하고 자리에 임했다.

대화 상대가 정해지고 상대방 분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마주 앉은 우리는 정말 다른 점이 많았다. 생물학적 성별도 남성과 여성으로 달랐고, 사는 곳도 인천과 충남으로 달랐다. 하물며 마시는 음료도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들이키는 나와 달리 따듯한 캐모마일 차를 드셨다. 사담을 몇 마디 나눈 뒤 우리가 응답했던 설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첫 번째 질문은 정년 연장에 대한 이슈였다. 나는 인구 감소와 인구 고령화로 인해 산업 현장에서 정년 연장은 피할 수 없는 길이라는 생각이었다. 의학 등의 기술 발전으로 생물학적인 나이는 들었을지라도 낼 수 있는 퍼포먼스는 훨씬 좋아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면, 나의 상대방은 정년 연장에 대해 반대했다. 평생 직장이라는 말이 통용될 수 있는 회사의 경우 정년 연장을 악용하여 젊은이들의 기회를 착취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했던 이야기다. 정년 연장이니 막연히 ‘몇 살까지 일할 수 있을까?’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타인의 기회를 침해하는 우려도 고려해야 하는구나.’하고 생각이 바뀌었다. 산업별로, 업태별로 서로 다른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두 번째 질문은 파업에 대한 이슈였는데 이 부분에서는 둘의 생각이 거의 비슷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노조의 역할도 변화가 필요하며, 이전과 같은 형태의 투쟁만 반복한다면 대중들의 공감을 얻기는 힘들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나는 막연하고 팍팍 치고 나가는 형태로 생각을 전달했는데, 상대방 분은 내 의견에 동조하면서도 관련된 법률이나 조항, 타국의 법률 등을 예로 들어 차분히 설명해서 디테일을 보충해주셨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마음 속에 작은 흥분이 일었다. ‘모르는 사람과 대화하는 것이 이렇게 즐거운 일이었구나,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일이었네?’ 하고 새삼 깨닫는 시간이었다. 행사장에 들어서기 전까지 ‘피곤한 정치 토론은 지겨워. 위험할 수도 있잖아. 나는 몸을 사리자.’라는 생각을 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울만큼 재밌고 즐거운 대화의 시간이었다. 다른 사람의 말에 조금 더 귀 기울이고 얼굴을 마주한다면 지금보다는 더 따스한 세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게 된다.

 

👉 <한국의대화>행사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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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대화>의 상세한 내용과 결과는 10월 11일 제 14회 아시아미래포럼 분과세션2 한국의대화 Korea Talks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글ㅣ조명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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